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르만 괴링 (문단 편집) ==== 부패와 사치 ==== >모든 뛰어난 연구 자료와 문화 자산을 확보해서 독일로 옮겨오는 것이 우리 국가사회주의에 주어진 당면과제다. >---- >- 1941년 괴링이 공포한 법령 예술품에 대하여 소유욕이 굉장했다고 한다. 약탈품 중에 히틀러가 점찍은 그림들도 대원수 전용열차로 차떼기해서 자기 저택으로 가져가는 용감함을 보여서 히틀러를 격분시키기도 했다. 네덜란드의 위작 작가 [[한 판 메이헤런]]에게 속아서 위조품 명화들도 한가득 산 적이 있다고 한다. 그런데 웃긴 건 그 '''사기꾼한테 준 거액도 죄다 [[위조화폐|위조지폐]].'''(…) --이런 걸 보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하겠지…-- --사기에는 사기다-- 또 프랑스와 여러 나라 미술관에 있던 많은 문화재 밀반출에 기여했다. 악명이 자자했기에 소련이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을 당시 레닌그라드에 위치한 [[에르미타주 박물관]][* [[루브르 박물관]], [[대영박물관]] 등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항상 꼽히는 곳이다.]를 방문했던 인사들은 빈정거리며 "괴링이 좋아라 여기로 오겠군!"이라는 말까지 했다. 이미 주요 전시품들과 중요 전시품들은 [[예카테린부르크]]로 피난을 마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많은 문화재들이 쌓여있었다. [[알베르트 슈페어]]의 회고록에 의하면, 계속된 군사적 실책으로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명예욕과 감투 자리에 집착하고[* 유일하게 거절한 작위가 [[하인리히 힘러]]가 1945년에 명예 친위대 상급대장을 제안했을 때였다. 사실 제국원수 계급을 가지고 있던 괴링에게 고작 [[상급대장]], 그것도 자신의 눈에는 군대로 보이지도 않는 [[슈츠슈타펠]]에다 까마득한 아래로 보고있는 힘러 휘하의 계급으로 들어오라는 건 천하의 제국원수 나리께는 콧방귀 뀔 가치조차 없던 일이었던 셈. 게다가 상징적으로 힘러의 아래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될 테니…] 축재와 미술품 사냥에 열을 올렸는데, 전쟁 중에 축재한 방법으로 미술품 중에 가치가 떨어지는 하품을 나치당 관구장들한테 비싼 값에 팔아먹었고,[* 약탈한 그림이 너무 많아서 저택 카린홀 창고가 모자라 천장에까지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.] 비밀리로 이탈리아를 통해 여성 화장품이나 스타킹을 밀수해서 암시장에 팔아먹었다고 한다. 값이 떨어지면 자기 수입이 주니깐 가격표까지 정하는 꼼꼼한 사업 경영 능력을 선보였다고 한다. 물론 제국원수 체면에 직접한 건 아니고 1차대전 당시의 전우를 시켜서 했다. 부하들한텐 선심 쓰듯 나눠주기도 했다고 한다. 전쟁 전에도 항공부 예산에서 뚝 떼서 괴링 호주머니로 들어가도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고,[* [[게슈타포]]가 체포하질 못해 암이 걸릴 지경이었다고… 하지만 1942년부터는 SS친위대의 수장 [[힘러]]가 권력이 자신보다 더 강력해짐과 동시에 게슈타포의 끈질긴 감시와 체포 시도가 더 많아짐에 따라 더욱 조심했다고 한다. 게다가 실제로 게슈타포는 괴링의 비리 내역과 증거 사진들을 쭉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.] 괴링 생일인 달엔 나치당 의원들한테 묻지도 않고 세비에서 선물비를 공제했다고 한다. 그러고도 생일날 선물은 또 따로 받았다고 해서 [[알베르트 슈페어]]의 증언에 따르면 나치당 의원들에게 아주 밉상이었고, 아무도 괴링의 생일파티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한다. 그의 사치 생활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, [[견직물|실크]]로 만든 [[군복]]이다. 당시에도 지금도 비단은 꽤 비싼 데다, 그것으로만 만들면 옷이 좀 흐물흐물해지는 등의 이유로 비단으로 남성용 정장을 100%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, 주로 안감과 [[셔츠]], [[넥타이]]에 넣거나 울에 혼방해 쓰는 정도인데, 이 인간은 그 비싼 실크를 '''100%''' 써서 만든 공군 정복을 입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. 이 밖에도 회의 중에 약에 취해서 쿨쿨 자빠져 자질 않나, 4개년 경제계획의 책임자임을 뜬금없이 내세워서 경제장관 발터 풍크와 프리츠 토트, 알베르트 슈페어 등 군수조직 책임자들과 충돌하기도 했다. 아니 거기까진 그렇다 쳐도 독일에 강철이 모자라자 어디서 주워 듣고 '''콘크리트로 기차를 만들자'''[* [[태평양 전쟁]] 후기에 [[미군]]이 특수 콘크리트로 만든 [[바지선]] 여러 척을 [[급양함]]으로 운용한 적이 있긴 하다. 다만 바지선이므로 후방에서 물자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제한적인 용도로만 사용하였다.]라는 제안을 슈페어에게 했다는 건 정말…[* 당시 콘크리트의 질을 생각한다면 가다가 퍼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